내게는 불편함이 충만했던 '기생충'

기사입력 2019.06.0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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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자료 출처 : 영화 기생충 중에서>


[인터폴뉴스-칼럼] 모두가 극찬하는 '황금종려상'이라는 말에  기대를 안고 '기생충'을 감상하면서 내게는 그리 달갑지 않은 불편함이 충만했다. 모두가 보기에 이 영화는 '모범적인 작품'이었기에  '황금종려상'이라는 큰 상을 받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익숙한 상반된 구조와 평범하지 않은 정신 장애(Psychotic disorder)를 접목한 시나리오 구성이 내게는 불편했다.


 

현대의 한국사회는 개천에서 난 용들이 '혼자서는 절대로 승천할 수 없는 사회적 구조를 안고 있다'는 사실을 개천에서 발버둥치는 특출 난 그들 스스로가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어디선가 던져진 동아줄의 끝자락이라도 잡고 싶어 하고, 그렇게라도 올라가 멋있게 하늘을 날고 싶어 하는 절대적 욕망이 가득하다는 사실이 만연한 진실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잡은 동아줄이  썩은 동아줄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인간적인 심성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과외를 위해 상류층 저택에서의 동아줄을 부여잡은 아들 기우의 모습은 지극히 일반적 구성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점점 용이 될 수 없는 무능한 가족 구성원들은 동아줄 끝자락을 부여잡고 있는 기우의 발목에 촘촘히 매달려 하나 둘 저택에 입성을 하고 기어코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며 벌어지는 우격다짐과 죽음들 그리고 추잡한  과정들이 기생충 같은 참으로 보편적이지 않은 정신 장애(Psychotic disorder)를 시사하는 듯해서 불편했다.


 

아마도 영화이기에 픽션에 임팩트를 더한 보편적이지 않은 시사점을 더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누구에게 무엇을 시사하는지 분명하지 않은 애매모호함은 아쉬움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삶의 터전이 지하-반지하-지상이라는 공간적 구성과 상류사회와 하류사회의 삶의 방식과 태도를 말해주고 있는 표현의 방식들이 칼 융의 무의식과 그림자, 페로조나(가면), 갈등, 욕망, 은둔 등의 단어들과 '누군가의 콤플렉스를 알게 되면 그 사람의 반응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는 이론을 배경으로 하였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면서 벌어지는 사건의 구성은 약자가 강자에게 품는 적대적인 감정보다 약자가 약자인 타인에게서 자신과 같은 콤플렉스와 모욕적인 모습을 보면서 견딜 수 없어하고 벌어지는 기분 나쁠 정도의 텁텁하고 자극적인 사회적 약자들의 심리상태를 칼 융의 무의식에 근거해 철저히 극대화 한 영화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의문이다. 누구를 향한 목소리일까?


 

영화가 자본주의 사회의 강자들을 향한 약자들의 외침을 보라는 것인지, 사회적 악순환으로 인해 가난에 찌든 환경과 궁색함이 페르조나 속에 감춰진 욕심 가득한 인간의 본성을 드러낸다고 말하고 있는 것인지, 혹은 지극히 정상적인 방법을 통해 돈을 벌려고 애를 써야하는데 평등을 주장하는 사회가 던져주는 복지 파퓰리즘에 습관화 되면 무력해진다는 삼각 피라미드 하부 구조의 모순점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그래서 추론한다. 


 

170억이라는 거대 제작비의 출자자는 CJ 엔터테인먼트와 기타 광고주들이라고 한다.  영화가 자본주의의 상반된 구조 및 병폐와 갈등을 말하고 있으면서도 제작과 마케팅 홍보 유통 이익배분 모두가 자본주의의 거대 자본을 주축으로 하고 있다는 아이러니한 사실을 바탕으로, 사회는 평등을 주장하고 있으나 자본 없이는 유지될 수 없는 사회적 구조를 지녔음을 말해주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약자는 가난한 삶을 유지하는 자들이고, 가난은 남루하고 보잘 것 없는 것으로 가난에 허덕이다 보면 숨기고 싶은 수치스러운 또 다른 나의 그림자 인간 본성을 드러나게 하고, 그런 수치의 감각조차 마비시켜  피하고 싶음을 벗어나 동변상련의 약자인 타인에게서 자신과 같은 콤플렉스와 모욕적인 모습을 보면 견딜 수 없어하며 공격적인 모습으로 돌변하고 만다. 그런 가난이 주는 인간 본성의 추잡한 그림자를 기생충이라 표현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싶다.



사회는 평등을 주장하고 있으나 자본 없이는 유지될 수 없는 사회다. 자본에 의한 상하강약의 구조적 모순은 가난을 유발하고, 평등을 앞세운 무상 복지 파퓰리즘은 게으름을 유발하게 한다. 게으름은 무의식 속 인간의 본성을 더 추하게 하고 결국 이것이 장애를 유발한다. 이러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구나 적절한 페르조나(가면)를 쓰고 살아가지만, 인간의 무의식 속의 감추어진 또 다른 나의 그림자 심리장애는 이러한 열악한 환경(가난)이 반복되고 초라하고 남루한 삶에 허덕이다 보면 점점 더 추악한 기생충의 모습으로 꾸물꾸물 드러나 원초아(본능적인 나), 자아(현실적인 나), 초자아(도덕적인 나)의 체계를 무너트리고 말 것이다. 

[강명구 기자 highbrpwxxx@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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